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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자본과 대한민국의 전망 Part 1 - 애증의 미일관계

2024-07-25
조회수 942


‘미국자본’은 대한민국에 있어서 '상수'이며, '변수'가 아니다. ‘미국자본’이 빠져나가는 것과 미군이 철수하는 것 중 무엇이 한국에 더 큰 위협이 될까? 본문은 사대주의를 조장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변리사로서 국제적 자본의 흐름에 대한 관조를 통해 대한민국이 가질 ‘앞으로의 산업적 기회’를 지정학적 관점에서 찾아보고자 작성한 글이다.



Part 1. 미국과 일본의 관계, 그리고 대한민국의 성장


1. 미국과 일본의 달콤살벌한 관계

미국은 일본에 두 번이나 공격을 당했다. 한 번은 진주만 폭격, 또 한 번은 1980년대 일본의 폭풍 경제성장이다. 일본은 두 번 다 미국의 지원으로 국가 성장의 기회를 잡았고, 결국 미국의 기대에 어긋났다. 메이지 유신(1868년)은 일본 근대화 개혁으로, 아편 전쟁(1840년, 1856년) 이후 뒤늦게 일어났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부터 불과 42년 전의 사건이다. 메이지 유신이 아무리 혁신적이었더라도, 청일전쟁(1894년), 러일전쟁(1904년)에서 일본이 청나라와 러시아를 격파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외부의 거대 자본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시간이라는 것이다.


‘미국자본’의 승인 없이 일본이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무기산업이 발전. 그에 기반한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마침내 동아시아 식민지 개척을 진행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영국처럼 비싼 운영비가 들어가는 ‘식민지 직접운영’방식(직영)이 아니라, 기업을 통해 타국의 시장을 컨트롤(가맹)하는 ‘미국자본’의 입장에서는 더 넓은 시장을 만들기 위해 일본에 투자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조선반도에 철도를 깔고, 자원을 싸게 사들이며, 늘어나는 조선 인구에게 신식 물건을 파는 방식은 식민지 직접운영 방식보다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미국은 '제어 가능한 시장'을 선호하며, 그들의 장마당을 넓혀 국력과 달러의 권위를 보호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1868년)으로부터 1940년까지 근 70년간 고도성장한 일본은 진주만 폭격을 했고, 이것은 미국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이었음이 자명하다.  



2. 일본의 눈부신 성장과 미국의 제어

두 번째 배신은 일본의 경제성장이다. 한국 언론이 자주 사용하는 '버블경제'라는 표현은 일본의 경제성장을 얕잡아보는 것이다. 그것은 ‘버블’이 아니었다. 원자폭탄을 맞은 최초의 국가인 일본은 미국의 전진기지가 되었고, 6.25 전쟁을 기회로 30년 가까이 크게 성장했다. 1950년대 당시 ‘미국자본’은 1870년대에 한 번 경험을 했던 ‘일본성장’ 프로젝트를 다시 선택했다. 그 정도로 오펜하이머 팀이 만든 폭탄은 무서웠고, 20세기 초반의 세계를 바꾼 철학적 움직임이 ‘공산주의’가 소련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지정학, 철학적, 자본적, 기술적인 요소가 뒤얽힌 조선반도의 상황에 의해서 일본이 다시 ‘미국자본’의 선택을 받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시마과장'은 일본의 경제성장을 세부적으로 보여준 수작


1930년대 식민지 시대의 담양 대나무들은 일본에 수탈되어 미국 에디슨이 만든 ‘전구’의 필라멘트로 사용되었던 기록이 있고, 부산 영도 ‘깡깡이 마을’에서 제조된 선박들은 일본의 상선, 군함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 1950년대에도, 일본은 ‘미국자본’에게 대한민국을 반-공산체제로 만들기 위한 베이스캠프의 의미가 있었고, 대한민국은 폭발적 인구성장으로 저렴한 노동력과 ‘괜찮은 시장’으로서의 가능성(지금의 베트남과 비슷하다)을 보였다. 1960년대의 한국기업들은 일본기업의 재하청 역할을 했고, 제품화 된 원자재들의 최종 수출국은 결국 미국이었다. 당시 미국이 누리던 ‘소비의 시대’는 지금도 너무 유명하다. 달러의 생산을 조절할 수 있는 국가.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화폐인 ‘달러’는 그 정도로 위력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글을 보는 당신도 ‘달러’를 좋아하지 않나? 나도 ‘달러’가 좋다. 미국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도 ‘달러’를 좋아한다.


1970년대 후반에는 일본이 가전, 반도체, 컴퓨터, 자동차, 조선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성장하면서 미국의 제조업 공급망(Supply Chain) 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얼마전 슈카월드에도 나왔지만, 지금의 미국은 배(상선)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제조업은 환경오염과 인건비, 노동조합의 문제가 상당하기 때문에, 미국은 때마침 불기 시작한 소프트웨어와 제약산업으로 눈을 돌린다. 제조업은 일본이 아시아 공급망을 잘 관리하고 있었고, 경박단소한 섹시한 ‘워크맨’과 같은 소비재들을 미국에 충실히 공급하고 있었다. 당시의 독일(서독)도 마찬가지 역할이었다. 우리가 ‘전범기업’이라고 부르는 기업들은 대부분 ‘생산경험이 풍부한’ 기업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활용하여 싸고 좋은 자동차와 가전기기들이 미국에 공급되었다. 하지만 달러의 흐름이 한쪽으로 쏠렸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은 쏠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이 했던 것처럼 ‘아편전쟁’을 다시 벌일수는 없었고, ‘달러’는 종이이기 때문에, 머리를 잘 쓰면 해결할 수 있었다.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였고, 이후 달러 가치는 엔화 대비 50% 가까이 하락했다. 일본은 수출이 줄어들며 30년 장기불황의 늪에 빠졌다. 국제적으로 합의된 사항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8962 기사참조



3. 그리고 칩워(Chip War)의 시작 – 우리는 왜 잘살게 되었나?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1986년 미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반도체 협정은 일본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이는 결국 '비메모리'는 대만, '메모리'는 대한민국으로 배치하려는 미국의 전략이었다. 도쿄일렉트론(TEL), 토키캐논, 니콘과 같은 장비회사들과 스미토모 등의 화학소재 회사들은 살아남았지만, 일본의 NEC, 도시바, 히타치와 같이 1990년 세계 1,2,3위의 반도체 완제품 회사들은 2020년에는 순위권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년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협정은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를 메모리 강자로 만들었다. 주성엔지니어링, 한미반도체, 세메스, 원익IPS 등의 반도체 장비회사, 소재 생산기업들은 대한민국 주식시장의 화룡점정이었고, 한국경제는 우상향을 그릴 수 있었다. 1987년 $3,467 였던 대한민국 1인당 국민소득이 1996년 $13,077로 4배 성장했다. 2017년 1인당 국민소득 3만불을 돌파한 우리도 이제 ‘에르메스 들고 다닐 수 있다’.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본 일본 정부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했을까?



일본 회사들은 사그라졌고, 메모리 한국 기업 2곳, 비메모리 대만 기업 1곳. 칩을 설계하는 '팹리스'회사인 미국기업 6곳으로 정리 되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IT산업의 기둥이 되었다. 반도체에서 시작된 기술축적은 디스플레이, 가전, 의료기기, 2차 전지 등 IT산업으로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말부터 IT 벤처기업이 생기고, 창업이 활성화되었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의 약 25%를 차지하며, 수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끝이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큰 문제다. 윤석열 정부에서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지만, 해외에서는 대한민국 반도체, IT산업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한국은 '갈라파고스'가 될것 같다는 이야기를 대만에 나가있는 선배에게 들었다. 대한민국의 지금은 인구가 감소하고, 평균 임금이 높아 ‘미국자본’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시장이나 노동원 공급처로 평가받기 어렵다. 돈은 ‘움직이려는 속성’이 있다. 수익률이 낮은곳에는 가지 않는다. 달러는 금교환권이었던 시절에서 많이 벗어났고, 연방준비은행은 달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온갖 방법을 고민한다. 달러 그 자체가 ‘미국자본’인 상황에서, 당신이 ‘달러’라면, 대한민국에 올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선택을 해야 장기적인 국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Part 3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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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엄정한 변리사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생물공학부를 졸업하고, 2006년 변리사 시험에 합격(제43회)했습니다.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직접 투자하는 '특허법인 BLT'을 유철현 변리사와 2013년 공동창업하고, 엑셀러레이터 'Company B' 및 '컴퍼니비 개인투자조합'을 운영하였습니다.
 

기업진단, 특허전략, 브랜드 전략, 투자유치 전략, 스타트업 마케팅 등의 강의를 수행하고 있으며, 엔젤투자와 스타트업 참여(기획, 마케팅, 전략, IP)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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